같은 자리에 17년

보리는 거실 창가의 그 자리에서
17년 동안 같은 방향을 바라봤습니다.

오후 두 시쯤이면 거기 있었고,
밤이면 침대 발치에 와 있었고,
부엌에 서면 어느새 발치에 있었습니다.
자리로 남은 17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게 합니다.

보리는 무던한 아이였습니다.

부르면 안 왔습니다.
대신 부엌에 서면 어느새 발치에 와 있었습니다.
자기 그릇 외에는 절대 먹지 않았고,
잘 때는 늘 한 발을 침대 밖으로 빼고 잤습니다.
17년 동안 그 자세 그대로.
큰 표현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,
보리가 어디 있는지는
늘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습니다.
그게 17년이었습니다.
자녀들이 독립한 뒤에는 이 집의 셋째가 보리였고,
그 셋째가 우리 부부의 일상을
잡아주고 있었다는 걸 이제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.

자리로 남은 시간

어떤 기억은 사람보다 장소로 더 오래 남습니다.
보리가 늘 머물던 자리들은 지금도 집 안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.

17년의 시간

보리와의 시간은 한 순간이 아니라 계절을 17번 지나온 흐름이었습니다.

1살 — 만남

유기묘 보호소에서 만났습니다.
그때 보리는 이미 두 살이 다 되어가는 어른이었고,
"이 아이는 너무 도도해서 입양이 잘 안 된다"는
말을 들었어요.
그게 마음에 걸려서 데려왔습니다.
17년 우정의 시작이었습니다.

5살 — 자리 잡기

거실 창가의 그 자리가
보리 자리로 정해진 게
이때쯤이었어요.
우리 부부도, 보리도, 이 집의 리듬에 익숙해진 시기.
가장 활기차고 가장 평화로웠던 시절입니다.

5살 — 자리 잡기

거실 창가의 그 자리가
보리 자리로 정해진 게
이때쯤이었어요.
우리 부부도, 보리도, 이 집의 리듬에 익숙해진 시기.
가장 활기차고 가장 평화로웠던 시절입니다.

10살 — 가족의 변화

첫째가 결혼하고, 둘째도 독립한 해.
빈 자리가 갑자기 늘어난 집에서
보리의 자리만은 그대로였습니다.
그게 큰 위안이었습니다.

보리에게

보리야,

17년이었어.

너랑 우리 부부가 같이 늙어간 시간.
아이들이 독립하고
집이 조용해진 뒤에도
우리 셋의 리듬은 그대로였지.

부엌에 서면 너는 발치에 와 있었고,
오후 두 시면 창가에 있었고,
밤이면 우리 발치에 있었어.

큰 표현 한 번 안 하는 아이였지만
보리가 어디 있는지 모른 적이
17년 동안 한 번도 없었어.

그게 사랑이라는 걸,
보리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
우리는 그냥 알게 됐어.

마지막 6개월이 우리에게 준 시간을
오래 기억할게.
무릎 위에서 보낸 그 시간들,
충분히 인사할 수 있었던 그 날들.

보리야,
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동안
이 자리에서 너를 계속 떠올릴게.

고마웠어. 정말.

아내

보리야,

내가 너를 처음 안았을 때
너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
딱 한 번 꼬리를 흔들었어.

그게 너의 동의 표시였다는 걸
나중에야 알았어.

17년 동안 너는 한 번도 큰 소리를 안 냈고,
한 번도 떼쓴 적이 없고,
한 번도 우리한테 무언가를 강하게 요구한 적이 없었어.

그런데 이상하게도
보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,
어디 있고 싶은지,
누구 옆에 있고 싶은지는
다 알 수 있었어.

말로 안 해도 알 수 있다는 게
어떤 거였는지,
보리가 가르쳐줬어.

이제 보리 자리가 비어 있어도
거기에 보리가 머무는 방식이
어떤 거였는지 잊지 않을게.

남편

보리야,

내가 퇴근하고 들어오면
넌 나오지 않았어.
그게 처음엔 좀 서운했는데,
나중에 알았어.
너는 부엌에 서 있는 너의 자리에서
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.

식탁에 앉으면 발치에 와 있던 너,
신문 읽고 있으면 옆 의자에 올라와 있던 너,
잠들기 전 침대 발치에 한 발을 빼고 누워 있던 너.

너는 시끄럽지 않게 가까이 있는 법을 알았던 것 같아.
17년 동안 그게 우리 집의 공기였어.

마지막 6개월,
네가 무릎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
나는 솔직히 무서웠어.
“이제 정말 끝이구나” 싶어서.

그런데 그 6개월이
나에게는 너랑 가장 가까웠던 시간이었어.
너의 작은 무게,
너의 작은 숨소리,
17년 동안 한 번도 못 들었던 너의 가르릉 소리까지.

마지막에 다 들려준 것 같아.

고마웠다, 보리야.
같이 늙어가줘서.

보리의 시간은,
이 집과 함께 머무릅니다.

17년 동안 늘 같은 자리에 있던
보리는 이제 자리만 남았지만,
그 자리들이 곧 보리의 시간입니다.
햇살이 드는 창가에서, 부엌 발치에서, 침대 끝에서.
이 페이지에서 오래오래 보리를 기억합니다.